1부와 2부에 이어 올해 개봉한 좋은 영화들 중에서도 제게 압도적인 감흥을 준 영화 TOP 5를 뽑았습니다.
영화를 만난 순간이 작년 한 해 최고의 순간들로 기억될 만큼 저에게 소중한 영화들입니다.
올해도 좋은 영화들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글을 적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리스트는 국내 개봉 or 프리미어 상영이 2021년인 영화를 대상으로 했습니다)
TOP 5. <피닉스>, 크리스티안 펫졸드
펫졸드는 독일의 역사적인 소스를 기반으로 인간 본질에 대해 깊숙이 탐구하는 드라마를 만들어 왔습니다.
<피닉스>는 작가의 전작 <트랜짓>의 연작처럼 느껴지는데요(한국 개봉은 <트랜짓>이 먼저였지만, 실제로는 <피닉스>가 먼저 만들어졌습니다),
<트랜짓>은 나치를 현재로 소환하여 체제에 의해 분열하는 관계를 관찰한다면, <피닉스>는 전후 독일로 돌아가 전쟁이 남긴 상처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개인의 내면에 집중합니다.
주인공 넬리는 이전과 같은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그대로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녀의 외모, 사람들과의 관계, 남편과의 사랑 모두 변했습니다.
영화는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그녀가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여정입니다.
화장을 고치고, 연극을 펼쳐보아도 이전의 자신을 알아봐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을 갈구해도,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마음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마지막 순간 과거의 자신과 작별을 다짐한 그녀가, 위선자들을 향해 "Speak low"를 부르는 장면은 올해의 엔딩으로 손색없습니다.
TOP 4. <아네트>, 레오스 까락스
오랜만에 돌아온 레오스 까락스의 신작 <아네트>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아네트>는 감독의 전작 <홀리 모터스>처럼 감독 자신과 실제 따님이 직접 등장하여 막을 올리는데요,
이 때문인지 <아네트>의 이야기는 현실의 레오스 까락스 부녀의 모습과 겹쳐서 보입니다.
그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딸에 대한 죄책감이나 복잡한 감정들이 <아네트>에 녹아져 있을 것입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들을, 레오스 까락스는 영화라는 언어를 빌려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뮤지컬 영화로서도 <아네트>는 매우 훌륭합니다.
우선 Sparks가 감독한 영화 음악은 기대보다 더 좋습니다. "So May We Start"와 극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넘버인 "We Love Each Other So Much"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흥얼거리게 됩니다.
또한 레오스 까락스의 창의적인 연출을 통해 <아네트>는 뮤지컬 영화가 가진 틀을 깨고 매우 독특한 영화로 완성되었습니다.
TOP 3. <프렌치 디스패치>, 웨스 앤더슨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잡지를 완성하는 이야기인 <프렌치 디스패치>는 형식 또한 잡지의 구성 방식에서 빌려왔습니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4개의 이야기가 이어지는데요, 모든 이야기가 매력적입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미식 섹션의 이야기입니다. 로박 라이트와 네스카피에가 이민자로서 느낀 동병상련의 아픔을 공감하는 이야기에는 큰 울림이 있습니다.
웨스 앤더슨 특유의 연출은 여전합니다. 강박적으로까지 느껴지는 화면의 균형과 색감은 눈이 부십니다. 매 쇼트가 잡지에 포함된 삽화처럼 예쁩니다.
영화에 삽입된 애니메이션 또한 다른 장면 못지않게 좋습니다.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 코믹한 추격 장면은, 영화에 색다른 재미를 더합니다. 개인적으로 만화 <땡땡의 모험>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스타 배우들이 웨스 앤더슨 월드에서 펼치는 연기도 흥미롭습니다. 빌 머레이, 틸다 스윈튼, 에드워드 노튼, 오웬 윌슨, 프랜시스 맥도먼드 등 감독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던 인물부터 베니시오 델 토로, 티모시 샬라메, 리나 쿠드리 등 처음으로 등장한 배우들의 앙상블을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모든 쇼트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프렌치 디스패치>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더불어 감독의 최고작이라 불려 마땅합니다.
TOP 2. <우연과 상상>, 하마구치 류스케
<우연과 상상>은 우연과 상상에 관련한 세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입니다.
홍상수가 연출한 구로사와 기요시의 이야기 같은 이 영화는, 담백하지만 묘한 분위기를 풍깁니다(하마구치 류스케 X 봉준호의 대담에서 두 사람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직접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항상 대화를 쓰는 것으로부터 집필을 시작한다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답게 대화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첫번째 단편 <Magic (or something less assuring>에서는 대화만으로 영화의 흐름을 쥐락펴락하며, 관객을 긴장시킵니다. 두 번째 단편 <Door Wide Open>의 낭독 장면과 이어지는 대화 장면도 대단합니다.
세 개의 이야기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마지막 단편 <Once Again>입니다.
레즈비언인 주인공이 처음 보는 사람을 자신이 짝사랑했던 동창생으로 오인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관객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곳으로 흘러갑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루어지는 재회는 올해 영화를 보며 만난 장면 중 가장 따뜻한 장면입니다.
TOP 1. <드라이브 마이 카>, 하마구치 류스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는 영화를 보면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감을 선사합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감독의 최고작입니다.
영화는 여러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러 나라의 배우들이 연기하는 <바냐 아저씨>, 가후쿠와 오토 그리고 다카츠키의 이야기, 오토가 지은 전생에 칠성장어였던 소녀의 이야기, 미사키와 그녀의 어머니 이야기, 유나와 윤수 부부의 이야기, 가후쿠와 미사키의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를 한데 모아 전진시키는 감독의 솜씨는 극중 언급된 미사키의 운전 실력처럼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 수준입니다.
'최고의 장면을 보았다는 흥분에 가슴을 진정하고 있는데 더 훌륭한 장면이 시작되고 있었다'는 정성일 평론가의 말처럼 영화는 약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계속해서 기대감을 높입니다(글을 쓰면서 러닝타임을 찾아보고는 놀랐습니다. 체감은 그보다 훨씬 짧게 느껴집니다).
모든 장면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두개의 장면이 있습니다.
영화의 초중반 유나, 윤수 부부가 집에 가후쿠와 미사키를 초대하여 함께 밥을 먹는 장면. 이 장면이 주는 대단한 위로가 있습니다. 자신밖에 대화할 사람이 없는 유나의 이야기를 수백 명분 들어주겠다는 윤수의 발언에서 우리는 둘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사랑과 신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관계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후쿠와 다카츠키가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 오토가 들려주던 '전생에 칠성장어였던 소녀'의 숨겨진 뒷 이야기가 다카츠키를 통해 밝혀집니다. 이야기가 주는 강렬함, 두 사람 사이의 긴장감, 밤의 도로를 미끄러지듯 유영하는 차까지 모든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 완성된 아름다운 장면은, 무엇이라고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이끌어 냅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쁜 연기자처럼 주고받는 말을 그저 큐사인으로 인식할 때가 있습니다. 듣기가 사라진 관계에서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했습니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이런 저에게 소중한 것에 귀를 기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연극도, 삶도 제대로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귀를 열어야 합니다.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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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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