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선언>을 보고 왔습니다. 시사회를 통해 먼저 영화를 접한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꽤 볼만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초반 1시간은 아주 훌륭했습니다. 특히 비행기가 뒤집히는 장면은 대단히 인상적인데요, 수시로 방향이 바뀌는 중력을 정교하게 묘사하는 기술력은 감동적인 수준이고, 기체와 함께 회전하는 햇살과 그림자의 이미지도 강렬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후반 약 1시간 동안, 흔들리는 기체와 함께 급격히 추락합니다. 영화 후반부의 상황과 인물들의 행동은 납득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어떤 측면에서 매우 위험하게까지 느껴집니다. 스포일러가 될 테니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지만, 영화는 이런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사회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악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마치 자연재해를 닮아서 평범한 인간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평범한 사람이 이런 악 혹은 재해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희생이 필요하고, 이런 희생은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숭고한 선택이다.’
얼핏 들으면 맞는 말 같기도 하지만, 글쎄요. 제게는 소수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결국 영화의 결말은 150명이 희생과 한 명의 희생 중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었죠. 저는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도, 소수가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설정도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정말 감독이 이런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혹은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재미를 위해 억지로 시나리오에 변곡점을 만들어 놓고, 어떻게든 이를 이으려고 한 거겠죠. 후반부의 사회 드라마를 포기하고, 잘하는 부분에 더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장르적인 재미에 집중했다면 훨씬 더 좋은 영화가 되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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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영화평이 흥행을 좌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라가는 티켓값에 맞춰 눈도 높아지고, 남들의 평가에 더욱 귀 기울이게 된 것이겠죠. 그런데 인터넷에 올라오는 모든 리뷰가 정확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전 인터넷 여론처럼 최동훈의 <외계인>이 졸작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못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브로커>도요. 그리고 <한산>이 <외계인>보다 나은 영화라는 의견에는 더더욱 동의하지 못합니다. 이런 의견들이 아주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브로커>나, <외계인> 모두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은 사실이고, <한산>은 전작보다 나은 영화인 것은 분명하니까요. 하지만 몇몇 리뷰들은 실제 사실보다 훨씬 더 과장되게 표현해서,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게 만듭니다. 물론 이해는 갑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관심을 받으려면 아주 ‘독한’ 리뷰를 써야 할 테니까요. 하지만 심지어는 영화를 보지도 않고, 영화를 평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오류가 많은 글들이 꽤 많습니다. 욕을 할 거면, 적어도 영화는 봐야겠죠.
제가 우려하는 이유는, 이런 흐름이 지속된다면 악용될 위험이(이미 악용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크기 때문입니다. 초반 몇 개의 리뷰로 방향만 잡아 놓으면, 그다음은 원하는 대로 여론을 유도할 수 있을테니까요. 물론 악용하는 사람(혹은 단체)이 나쁜 것이지만, 영화에서 말한 것처럼 악은 언제나 우리의 통제 밖에 있습니다. 그러니 악이 개입하지 못하게 성숙한 리뷰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성일 평론가는 영화 만드는 일보다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리뷰를 쓰기 전에, 우리 모두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이 쏟는 시간과 노력을 조금이라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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