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빅식
감독: 마이클 쇼월터
개봉: 2017년
볼 수 있는 곳: 왓챠, 유튜브 영화
Good Tastes 별점: ★★★☆
파키스탄 출신의 스탠드업 코미디언 쿠마일은 어느 날 우연히 결혼에 실패한 전적이 있는 에밀리를 만납니다. 둘은 운명처럼 깊은 사랑에 빠지지만, 서로 다른 문화로 인한 오해로 이별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에밀리는 정체모를 병에 걸려 코마에 빠지고, 그녀의 옆을 그녀의 부모님과 쿠마일이 함께 지키게 됩니다.
<빅식>은 두 남녀가 만나고 위기를 극복해 결국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충실히 따릅니다. 하지만 여타 영화와 비슷한 플롯에도 <빅식>은 그저 클래식 로맨틱 코미디를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로맨틱 코미디는 다른 어떤 장르보다 시나리오가 중요한 장르입니다. 때문에 감독보다 오히려 각본가에게 시선이 쏠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나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등의 이야기를 쓴 노라 에프런은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으로 불리며 감독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가졌죠.
이 영화의 각본가 쿠마일 난지아니(본인 역도 겸했습니다)는 자신과 여자 친구의 경험을 각색하여 이야기를 썼습니다. 자전적 이야기여서인지, 이민자들이 느끼는 차별과 정체성 문제가 영화에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자칫 평범해 보일 수 있는 로맨스 이야기에 개성을 불어넣습니다. 게다가 요즈음의 사회 문제와 부합하기에 <빅식>은 시의적절한 영화라는 인상을 줍니다.
<빅식>의 시나리오는 이야기의 큰 줄기와 작은 곁가지를 다루는 방식이 모두 뛰어납니다. 주요 인물이 혼수상태에 빠진 사이에 남겨진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는 점에서 큰 이야기는 <당신이 잠든 사이에>를 떠올리게 하지만, 뛰어난 주제의식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깊숙이 조명하는 섬세함으로 더 밀도 있는 드라마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에밀리의 부모님과 쿠마일의 관계가 발전하는 과정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이야기의 균형감도 훌륭합니다. 영화에서 '빅식 (big sick)'을 앓는 것은 에밀리이지만, 사실 쿠마일도 전통과의 싸움에서 동일하게 '빅식'을 겪고 있습니다. 두 주인공 모두 '빅식'이 오기 전까지 그 문제에 대해 무심한 점, 양 주인공과 부모님과의 관계 등, 영화는 의도적으로 둘의 상황을 대칭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한편 자칫 무거워질 수 있었던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은 디테일한 부분입니다. 가끔씩 나오는 스탠드업 코미디의 유머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합니다. 또 흥미로운 점은 스탠드업 코미디 장면이 아닌 부분에서도 마치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것처럼 대화를 한다는 점입니다. 쿠마일의 본업이 코미디언인지라 일종의 직업병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튼 이런 유머들은 저에게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쿠마일의 가족이 쿠마일과 대화 중단을 선언했을 때, 쿠마일이 식탁에서 선보이는 카드섹션 대화는 <러브 액츄얼리>의 그 유명한 스케치북 고백 장면을 떠올리게 함과 동시에 그 자체로 훌륭한 스탠드업 코미디 장면입니다.
로맨틱 코미디의 경우 특히나 배우의 영향력이 큰 장르입니다. 맥 라이언 없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혹은 휴 그랜트가 없는 <노팅힐>은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영화는 단연코 성공하지 못했겠죠. 아무리 좋은 각본이라도 배우들이 매력적이지 않다면 그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로서 성립이 안됩니다.
<빅식>의 경우 혼수상태에 빠지는 바람에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에밀리는 조 카잔이 연기한 많은 캐릭터들 중에서도 가장 사랑스럽습니다. <왓 이프>의 샨트리보다 솔직하고, <루비 스팍스>의 루비보다 지적인 에밀리는 주변에 꼭 있을 것 같으면서도 판타지적인 면모를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조 카잔이 에밀리를 연기했기 때문에, 어떤 설정이든 관객에게 납득시킬 수 있습니다. 밤 중에 남자 주인공에게 똥이 마렵다고 소리치는 것조차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유부녀라는 사실도 전혀 문제로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시나리오를 완성시키는 것은 그녀의 몫입니다.
<빅식>은 유려한 시나리오, 시대에 맞는 문제의식, 훌륭한 배우까지 삼박자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 좋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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