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옥희의 영화
감독: 홍상수
개봉: 2010년
볼 수 있는 곳: 넷플릭스, 웨이브, 유튜브 영화
Good Tastes 별점: ★★★★☆
※본 리뷰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홍상수의 <옥희의 영화>(2010)를 다시 보았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대부분 그렇지만, 이 영화는 특히나 흥미로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옥희의 영화>는 소설로 치자면 연작 단편집과 비슷합니다(영화의 “영화는 이제 끝났어, 책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라는 대사를 떠올리면 이 영화의 구조에는 의미심장한 부분이 있습니다).
<주문을 외울 날>, <키스왕>, <폭설 후> 그리고 동명의 단편 <옥희의 영화>까지, 총 네 편의 단편이 영화를 구성합니다. 여기 한 가지 트릭이 더 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단편 간 명확한 시간 순서가 있다고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들의 순서를 섞어서 배열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 트릭은 아마 <자유의 언덕>의 뒤섞인 편지들과 같은 의도일 것입니다. 시간을 뒤섞어 의미를 만들어내려고 했다기보다는,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서사의 순서에 집착하게 만듭니다.
다르게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각 단편에 같은 이름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하는 생각이나 행동을 보면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동일인물이 그 사이에 변화한 것인지, 평행세계의 인물을 다룬 것인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제 홍상수는 시간이 아니라 차원을 가지고도 장난을 치는 걸까요? 이런 면에서 <옥희의 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실험에 있어서 어떤 정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단편들이 같은 차원을 공유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 시간 순서대로 다시 배열한다면, <폭설 후>, <키스왕>, <옥희의 영화>, <주문을 외울 날> 이렇게 될 것입니다. 단편마다 주인공들의 변화를 지켜보면 재밌습니다. <폭설 후>에서 총명한 눈으로 교수에게 질문을 하던 옥희는, <키스왕>에서 남자에 눈을 뜨고, <옥희의 영화>에서는 꽤 노련해진 솜씨로 두 남자 사이에서 줄타기합니다.
역시 <폭설 후>에서 영락없는 대학 신입생의 모습이던 진구는 <키스왕>과 <옥희의 영화>에서 사랑에 빠지고 쟁취하며 어른이 되어갑니다. 더 시간이 흐른 <주문을 외울 날>에서는 다른 여자와 결혼하고, 교수 사회 내에서 속물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폭설 후>에서 <옥희의 영화>까지 너무 감정에 솔직한 나머지 자신의 공정성까지 걱정했던 송 감독은, <주문을 외울 날>에서는 예전의 순수함은 잃고, 교수 사회의 중심에서 권력을 남용하는 파렴치한이 되어 있습니다.
글쎄요, 제 눈에는 옥희, 진구, 송 감독 모두 나이가 들면서 순수를 잃고 때가 끼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변화는 당연해지는 걸까요. 만약 이것이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면 참 씁쓸할 것 같습니다.
전 바보 같더라도, 더 솔직하고 싶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다른 영화 <인트로덕션>에 대한 리뷰
hGood Tastes 선정 2021년 BEST 영화 TOP 10 리뷰 (1부)
Good Tastes 선정 2021년 BEST 영화 TOP 10 리뷰 (1부)
2021년은 좋은 영화들이 쏟아져 나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참 행복한 1년이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고, 혼란스럽다고 해도 영화만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은 위로가 되
goodtastes.tistory.com
홍상수 감독의 다른 영화 <자유의 언덕>에 대한 리뷰
Good Tastes 영화 리뷰: <자유의 언덕>
제목: <자유의 언덕> 감독: 홍상수 개봉: 2014년 Good Tastes 별점: ★★★★☆ ※본 리뷰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0년대에 들어서기 전까지, 홍상수 감독은 늘 자신의 필모그래
goodtastes.tistory.com
'영화 리뷰 > 별점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Good Tastes 영화 리뷰: <요짐보> (0) | 2022.01.22 |
---|---|
Good Tastes 영화 리뷰: <굿타임> (0) | 2022.01.21 |
Good Tastes 영화 리뷰: <용과 주근깨 공주> (0) | 2022.01.17 |
Good Tastes 영화 리뷰: <멀홀랜드 드라이브> (0) | 2022.01.14 |
Good Tastes 영화 리뷰: <자유의 언덕> (0) | 2022.01.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