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용과 주근깨 공주
감독: 호소다 마모루
개봉: 2021년
Good Tastes 별점: ★★☆
※본 리뷰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1년 여름 개봉한 호소다 마모루의 <용과 주근깨 공주>를 이제야 보았습니다. 조금은 실망스러웠던 <미래의 미라이> 이후 3년 만의 신작입니다. 국내외 평은 갈렸지만, 애정하는 <우리들의 워게임>, <썸머워즈>에 이어 다시 한번 가상세계 이야기로 돌아왔다기에 기대를 품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당황스러웠습니다. 이게 과연 내가 아는 호소다 마모루가 만든 영화가 맞는 걸까요? 흐름이 뚝뚝 끊기는 이야기에 맥 빠지는 결말. 유치하고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개연성도 핍진성도 부족한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설정. 비주얼과 음악을 제외한 모든 것이 실망스러웠습니다.
착잡한 마음입니다. 왜 이 정도밖에 만들지 못했을까, 화를 내고 싶은 심정입니다. 지금까지 호소다 마모루의 모든 영화를 보았고, 그를 열렬히 응원해온 팬이기에 더욱 마음이 복잡합니다.
<늑대아이>라는 걸작을 내놓은 이후, 호소다 마모루의 커리어는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고 있습니다. 호소다 마모루는 현실 세계에 판타지적 요소를 적절히 가미하면서 휴머니즘 가득한 따뜻한 영화를 만들어왔습니다. 메시지가 좋은 영화들이었습니다. 비주얼이나 판타지 설정도 뛰어났지만, 호소다 마모루의 영화에서 가장 훌륭한 것은 시나리오입니다.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샌가부터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듯합니다.
<용과 주근깨 공주>가 내세우는 것은 압도적인 시각적 체험입니다. <썸머워즈>나 <괴물의 아이>의 시각 효과도 뛰어났지만, 이번 영화의 비주얼은 가히 압도적입니다. 애니메이션 영화의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영국의 건축가 에릭 웡과 함께 디자인한 <용과 주근깨 공주>의 가상 세계 'U'는 우리가 상상한 메타버스의 모습, 그 이상을 보여줍니다. 디자이너 이가 다이스케가 디자인한 벨의 의상 또한 눈부십니다. 그가 디자인한 옷을 입고 가상세계를 거니는 벨의 모습은, 화려한 패션쇼의 런웨이를 보는 듯 합니다. 애니메이션의 시각적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다던 호소다 마모루의 광적인 집착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뛰어난 비주얼 외에는 어떤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용과 주근깨 공주>는 꽤나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가상 세계에서는 자경 행위의 옳고 그름에 관련한 문제를, 현실세계에서는 한부모 가족의 가정폭력 문제를 다룹니다. 주인공이 엄마를 잃은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성장하는 과정도 영화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성장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사랑과 우정과 관련한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풀어갈 이야기가 많으니 영화는 처음부터 바쁘게 움직입니다. 가상세계의 멋진 비주얼을 뽐내다가도 현실세계로 돌아와 숙제를 하듯 급하게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얼마 가지 않아 억지로 진행시키던 이야기는 설득력을 잃고 외형만 남습니다. 시나리오에 비약이 너무 심해 관객들이 공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 많은 이야기를 한 영화에 집어넣으려고 한 것이 패착입니다.
이러한 비약은 매우 위험합니다. 영화에서처럼 가정 폭력을 한 번의 포옹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인터넷의 폭력을 진심을 담은 노래 한 번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름답지만,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습니다. 아무리 애니메이션이라도, 이런 문제는 더 진중하게 다뤄야 합니다.
호소다 마모루는 기존의 영화를 답습한다, 영화가 패턴화 되어있다는 지적을 숱하게 받아왔습니다. 저는 이것은 완전한 오해고, 소재만 비슷할 뿐 그 실상은 전혀 다르다고 진심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이야기가 무너지니 모든 설정들이 기존 본인 영화의 짜깁기처럼 밖에 느껴지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는 제가 다 낯부끄러울 정도로 자주, 그의 이전 영화들이 떠오릅니다. <용과 주근깨 소녀>는 <썸머워즈>의 가상 세계와 <시간을 달리는 소녀> 현실 세계를 버무려 세계관을 세우고, <미녀와 야수>의 플롯에 <괴물의 아이>와 <늑대아이>의 소재를 적당히 차용하여 만든 영화로 보입니다. 영화의 그 어떤 부분에서도 새로움을 느낄 수 없습니다.
호소다에게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는 남아있지 않은 걸까?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더 이상 없는 걸까? 하는 불안한 질문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습니다. 제발 이것이 저의 착각이길 바랍니다.
당신이 보여주시는 것에는 충분히 만족했으니 다시 이전처럼 멋진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감독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다른 영화 <늑대아이>에 대한 리뷰
Good Tastes 영화 리뷰: <늑대아이>
제목: <늑대아이> 감독: 호소다 마모루 개봉: 2012년 볼 수 있는 곳: 왓챠, 웨이브, 유튜브 영화 Good Tastes 별점: ★★★★★ ※본 리뷰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타지 생활을 하다
goodtastes.tistory.com
'영화 리뷰 > 별점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Good Tastes 영화 리뷰: <굿타임> (0) | 2022.01.21 |
---|---|
Good Tastes 영화 리뷰: <옥희의 영화> (0) | 2022.01.19 |
Good Tastes 영화 리뷰: <멀홀랜드 드라이브> (0) | 2022.01.14 |
Good Tastes 영화 리뷰: <자유의 언덕> (0) | 2022.01.10 |
Good Tastes 영화 리뷰: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0) | 2022.01.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