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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별점 리뷰

Good Tastes 영화 리뷰: <멀홀랜드 드라이브>

by 씨네슈 2022. 1. 14.

멀홀랜드 드라이브 데이빗 린치
데이빗 린치, 멀홀랜드 드라이브

제목: <멀홀랜드 드라이브>

 

감독: 데이비드 린치

 

개봉: 2001년

 

볼 수 있는 곳: 웨이브, 유튜브 영화

 

Good Tastes 별점: ★★★★

 

 

 

※본 리뷰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어떤 건물 안에 있습니다. 높이는 3층쯤이고, 학교 건물처럼 가장자리에 회색 타일로 된 복도가 있습니다. 창밖으로는 푸른 하늘과 구름이 보입니다. 날이 맑습니다. 정확하게 누구와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중학교 때 친구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창문에 기댄 채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갑자기 건물 안에 경보음이 크게 울려 퍼집니다. 우리는 순간 얼음처럼 굳습니다. 너 나 할 거 없이 재빨리 주변을 살핍니다. 묘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갑자기 폭발음이 들려옵니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빼 하늘을 보니, 전투기가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얼른 도망쳐야 한다.' 심장박동은 빨라지고, 혈액이 얼굴로 쏠려 뜨겁습니다. 

순간 장면이 어지러이 전환됩니다.  

제가 있던 건물은 어느새 전쟁 영화에 나올 법한 폐건물이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건물에서 내려오는 과정은 온데간데없고, 거리를 내달리고 있습니다. 전투기는 나를 쫓아오면서 폭격을 퍼붓습니다. 몇몇 친구들은 폭탄에 맞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돌아볼 겨를조차 없습니다. 겨우겨우 공격을 피해 가며 달립니다. 점점 폭탄 소리가 가까워집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내 다리는 점차 굳어갑니다. 더 이상 내 맘대로 다리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일촉즉발의 상황,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무언가를 꺼냅니다. 거기에는 청록색의 옥돌이 있습니다.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이 돌이 소원을 들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오른손 손바닥에 돌을 올려놓습니다. 무슨 일인지, 왼손에는 옥돌과 같은 모양의 보통의 돌멩이가 있습니다. 저는 두 돌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전쟁을 멈추라고 소원을 빌었고, 그러자 모든 것이 멈춥니다. 

그리고 저는 꿈에서 깼습니다. 

위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영화 줄거리가 아니고, 제가 며칠 전 꾼 꿈의 이야기입니다. 다시 봐도 어이가 없는 전개입니다. 이 날은 <그린북>을 보고 일주일 정도 후였고, 잠이 잘 오지 않아 새벽에 혼자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고 잔 날이기도 합니다. 

일어나서 잘 생각해보니 꿈속 건물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 속 폐건물과 꼭 닮았습니다. 전투기가 등장하는 것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마지막 장면 때문인 듯합니다(혹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가 출처일 수도?) 꿈속의 소원을 들어주는 옥석은 확실히 <그린북>이 출처인듯합니다. 주인공이 슬쩍 훔친, 행운을 준다는 돌멩이가 옥색이었던 것이 떠오릅니다. 소원을 들어주는 파워까지 생기다니 성능이 업그레이드되었네요.  

그래도 덕분에 꿈이 끝나서 다행입니다. 왜 꼭 꿈에서는 다리가 딱딱하게 굳어 곤란하게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아직도 크게 뛰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다시 한번 심호흡합니다.   

꿈에는 이처럼 꿈을 꾼 사람을 둘러싼 다양한 요소가 들어있습니다. 

나의 주변 환경(나는 3층에 살고 그 전날은 날씨가 참 좋았음), 혹은 최근에 한 경험(위에서 말한 것처럼 최근에 본 영화 두 편이 뒤죽박죽 섞임), 아예 잊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오래된 기억(중학교 때 친구들), 그리고 도저히 설명 못할 것(반대쪽 손에 쥐고 있던 돌멩이 같은)등 아주 여러 가지가 꿈에 녹아 있습니다.  

한 편, 많은 영화감독들은 꿈의 영상을 스크린으로 옮기고자 노력해왔습니다. 호기심 많은 영화감독들에게 미스터리 한 꿈은 항상 최고의 화수분이었습니다. 꿈은 영상의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매체들보다, 영화에 적합하기도 합니다. 

이런 감독들의 노력은 <인셉션>이나 <이터널 선샤인> 같은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성과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꿈이 가진 여러 속성을 가장 잘 구현해낸 영상은 장담컨대,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입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본 사람은 영화가 시작하고 한동안 반드시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 한동안이 아니라 영화의 3/4 지점까지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도대체 뭔지 감조차 잡기 힘듭니다.  

저는 이 영화를 가족들과 처음 봤습니다. 아니 ‘보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겠습니다. 영화가 끝날 때는 결국 나 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아빠는 도중에 얼굴을 찌푸리며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엄마와 사촌 누나는 잠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영상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나와 집중을 이어 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실력이 없어서 연거푸 살인에 실패하는 킬러 이야기, 식당에서 자꾸 저 건너편에 괴물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이상한 분위기의 오디션, 커피를 달라고 소리치는 회의실의 남자. 어색한 주제의 이야기들이 뻔뻔하게 붙어있습니다. 

이 영화를 계속 보는 것은 인내심의 문제입니다. 인내가 슬슬 한계에 부딪힐 때쯤, 이것이 한 여자가 꾼 꿈이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마지막 현실 부분에서 스토리가 조금은 명확해지고 곧 영화가 끝납니다.

관객은 바로 이해할 수 없었던 초반 장면들을 다시 떠올립니다. 그리고 고민 끝에, 하나하나의 에피소드에 그녀의 여러 가지 생각이나 현재의 상황이 녹아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방금 본 영상들은 꿈과 무섭도록 닮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다소 어이없는 전개나, 빠른 전환(우리는 보통 여러 꿈을 하룻밤 동안 꾼다) 과장된 표현. 우리가 꾸는 꿈과 닮았습니다.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도 사실은 관련이 있습니다. 세부적인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제 영화를 설명할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실력 없는 킬러의 이야기로 예를 들어보면, 주인공은 질투심과 배신감에 휩싸여 청부살인업자에게 연인을 죽여 달라고 의뢰합니다. 하지만 식당에서 킬러와 만나 의뢰를 한 뒤, 꿈에서는 후회에 시달립니다. 자신이 부탁해 놓고는, 킬러가 실력이 없어서 부디 그 일이 성공하지 못하도록 빌고 있는 것이겠죠. 꿈에서 킬러는 엉뚱한 곳에 총을 발사해 대다가 결국 실패합니다. 

킬러에게 의뢰하는 식당의 장면은, 식당 뒤편에 괴물이 있다고 말하는 장면과 관련이 있습니다. 연인을 죽이려는 그 마음을 괴물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이 외의 장면에도 골똘히 생각해보면 각자의 해석을 덧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곱씹기를 마치면, 어느새 영화를 다 봤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카타르시스가 관객을 찾아옵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꿈을 마주한 것만 같은 이상한 카타르시스. 
  
일본의 명감독 구로사와 아키라는 “꿈을 꾸는 동안에는 모두가 천재”라고 말했습니다. 글쎄, 내가 만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당장 깨고 나면 대부분 기억하지도 못하니까요. 하지만 잠을 자는 사이에 내 머릿속에서 대단한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꿈을 꾼 다음 날은 흡족한 마음으로 잠에서 깨도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데이비드 린치는 이 영상이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상영되도록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끄집어내 스크린에 옮겼습니다. 데이비드 린치는 끈질기게 깊고 넓은 꿈의 세상을 탐구했고, 그 결과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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